화랑도는 화랑을 대표로 한 신라시대의 청소년 수련단체를 의미하는데 화랑(花郞)이라는 말은 ‘꽃처럼 아름다운 남성’이라는 뜻이며 화판(花判), 선랑(仙郞), 국선(國仙), 풍월주(風月主)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화랑도는 단체 정신이 매우 강한 청소년 집단으로 교육적, 군사적, 사교 단체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배출함으로써 신라의 삼국 통일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한편으로는 골품제 사회에서 발생하기 쉬운 여러 계층간의 긴장과 갈등을 조절하고 완화하는 데도 이바지하였다.
화랑도의 기원은 삼한시대 촌락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한 청소년 조직이라고 생각되며, 골품제도가 확립된 6세기에 접어들어 그 조직이 국가에 의해서 반관반민(半官半民) 단체의 성격을 띠는 화랑도로 개편되었다. 그들은 강한 일체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민족의 고유 신앙과 주체적인 정신을 반영한 단체로 성장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화랑도는 한 시대에 하나의 집단만이 존재한 것은 아니다. 화랑도 운동이 크게 일어났던 진평왕 때의 경우를 보면 많을 때는 7개 이상의 화랑 집단이 동시에 존재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조정에서는 이들 여러 개의 집단을 통솔할 중심 기관 또는 중심 인물이 필요하였던 듯한데 화주가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추측되고 있다. 화랑집단의 구성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지만 화랑집단은 각기 화랑 한 명과 승려 약간 명 그리고 화랑을 따르는 다수의 낭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1. 화주(花主)
화랑도는 몇 개의 화랑집단으로 되어 있고, 이 화랑집단을 관장 통제하기 위하여 조정에서 화랑을 통할하고 보호하는 사람이 화주(花主)인 것으로 보는데, 화랑 통할의 직무상으로 보아 성인인 것 같다.
2. 화랑(花郞)
화랑에 대한 표기는 삼국사기에는 화랑(花郞), 풍월주(風月主), 삼국유사에는 국선(國仙), 선랑(仙郞)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화랑의 신분은 모두 진골 이상 귀족 출신이었다. 예를 들면 진흥왕 때의 사다함, 진평왕 때의 김유신(金庾信), 김흠춘(金欽春) 형제, 근랑(近郞), 죽지랑(竹旨郞), 태종 무열왕 때의 관창(官昌), 효소왕 때의 부례랑(夫禮郞), 헌안왕 때의 김응렴(金應廉), 진성여왕 때의 효종랑(孝宗郞)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화랑이 될 수 있는 조건은 진골 귀족 출신의 젊은이 중에서 용모가 수려하고 신의가 깊으며 동시에 사람들을 도와 주거나 사교성이 풍부한 인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다음의 기록에서 알 수 있다.
3.승려낭도 (僧侶郎徒)
승려낭도는 화랑을 언제나 가까이에서 보살폈으며 청소년 낭도를 지도할 뿐만 아니라 화랑에게 교육을 하고 그들이 환난에 처했을 때 측면에서 원조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4.낭도(郎徒)
연령은 15세에서 18세까지인 청소년으로 생각된다. 그들의 신분이나 자격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경주에 사는 육부민(六部民) 출신 자제들이 주축을 이루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출처 : 화랑교육원 "화랑도와 화랑정신" 중에서 (http://cafe.daum.net/kh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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