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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뉴스

[MBC 선덕여왕] 문노 국선 ( 화랑도의 총 지도자 ) 에 대한 진실을 말한다.




AD 579년 8세 풍월주에 오른 문노(536~606년)는 화랑정신의 표상이었다.

삼국통일을 이룬 김유신은 ‘화랑중의 화랑’ 문노를 ‘사기(士氣)의 종주’로 추앙했을 정도다.
 

당대 화랑도는 7세 풍월주 설화랑부터 파가 나뉜다.
설화랑의 화랑도는 향가와 청유를 즐겨 ‘운상인(雲上人)’으로,
8세 풍월주가 된 문노의 화랑도는 무사와 호탕한 기질을 자랑했기에
‘호국선(護國仙)’으로 각각 일컬어졌다.


삼한통합을 이룬 ‘화랑 정신의 전형’인 문노의 행적을 보자.

554~579년 문노가 백제·고구려·북가야를 잇달아 치고 큰 공을 세웠으나
상급을 받지 못했다.


이에 부하들 가운데 불평하는 자가 있자 크게 꾸짖었다.

“상벌이란 소인의 일. 그대들이 날 우두머리로 삼았거늘
어찌 나의 마음으로 그대들의 마음을 삼지 않는가”.

문노는 진흥왕이 급찬의 벼슬을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의리’ 또한 끝내줬다. 문노의 어머니는 가야왕의 딸.

사다함이 가야원정을 떠나며 동행을 요청했지만
문노는 “어찌 어미의 아들로 외가 백성들을 괴롭히겠는가” 하고
거절한 의인(義人)이었다.


부부관계도 타의 모범이 됐다.
어찌보면 ‘공처가’ 소리를 들을만 했다.

사소한 일까지 아내(윤궁)에게 물어보았다. 남들이 “초년의 기상이 없어진 게 아니냐”라고 힐난하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도 왕년엔 그런 사람들을 흉봤는데 지금 보니 아니야. 너희들도 장가 한번 가봐”.
보다못한 부인이 “영웅은 주색을 좋아한다는데 낭군은 술도, 색(色)도 절제하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며 첩 하나 두기를 권했다.
문노의 변. “색을 좋아하면 당신이 질투할 것이요,
술을 좋아하면 당신이 할 일이 많을 텐데…”

화랑세기는 “공은 용맹을 좋아하고 문장에 능했으며 아랫사람을 사랑했고,
청탁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자기에게 귀의하는 자는 모두 어루만졌다.
낭도들이 죽음으로 충성을 바쳤다.
이로써 사풍(士風)이 일어나 꽃피웠으니 통일대업이 공으로부터 싹텄다”고 칭송했다.

출처 : http://tvzonebbs.media.daum.net/griffin/do/talk/program/seonduk/read?bbsId=340_a&articleId=144&pageIndex=1&searchKey=subject&searchValue=문노